여행을 떠나요국내여행/사진미륵사지 석탑, 전북 익산 여행 필수 코스

미륵사지 석탑, 전북 익산 여행 필수 코스

Author

Date

Category

<메인 사진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인스타그램에 미륵사지에 있는 9층 동탑 내부에서 최근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을 배경으로 하는 인물 사진을 보고 가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출사지 코스에 미륵사지를 넣었는데 돌아와서 보니 앞으로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을 출사지에 종종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15년 서탑이 벼락을 맞아 무너졌는데 일본은 보수 공사를 한다며 185t 상당의 콘크리트를 부었다. 문화재 복원의 명분이 있었지만 오히려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석탑의 노후 및 안정성의 이유로 1998년에 해체 수리가 결정이 되었고 2001년에 시작하여 2009년에 해체 완료, 2017년에 조립 완료, 2019년에 가설 덧집을 철거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 다시금 백제의 숨결을 내쉬게 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가는 길

미륵사지 위치

   메인 주차장 바로 옆에 국립 익산 박물관이 있다. 코로나로 현재 2021년 8월 기준 사전 관람 예약을 해야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다. 관람 예약 및 박물관에 대해 자세한 정보는 국립 익산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에는 익산 백제실, 미륵사지실, 역사문화실 이렇게 3개의 실로 구성이 되어 있다.

  • 관람 시간
    • 국립 익산 박물관: 오전 10시 ~ 오후 6시
    • 미륵사지 옥외 공간: 오전 7시 ~ 일몰 시까지
  • 휴관일: 1/1, 설날, 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하고 다음 평일에 휴관)
  • 관람료: 무료

   메인 주차장에서 미륵사지 입구까지는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단 출구가 먼저 나오므로 팻말에 따라 더 들어가면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미륵사

   미륵사는 왕권을 강화하고 국력을 키우기 위해 세웠던 호국사찰이자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다. 삼국유사에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는 길에 용화산 밑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왕비의 청에 의해 이곳을 메우고 3곳에 법당과 탑, 화랑 등을 세웠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 일본 학자에 의해 문화재 보전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발굴 조사를 하면서 일본은 미륵사가 品자 3개가 합친 모양의 사찰이란 주장을 했다. 1980년에 시작한 한국의 발굴 조사를 통해 일본이 주장한 사실이 틀렸다는 것을 밝혔다. 그중 하나는 동탑, 서탑 그리고 가운데 목탑이 자리하고 있고 각 탑의 북쪽에는 금당의 성격의 건물이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동양 고대 연구에 밝혀진 바 없는 삼탑삼금당의 형태라고 했다.

미륵사 석탑

   미륵사지 석탑은 서쪽에 위치한 탑이다.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창건 당시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다. 이 석탑은 목조 석탑의 특징이 남아있는 석탑이다. <미륵사지석탑에 나타난 목조기법 연구> 논문을 보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석탑 1층 내부에는 “十”형 공간이 있어 네 방향에서 모두 출입이 가능하다. 2009년 1층의 첫 번째 심주석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의 기록을 통해 639년에 건립되었음이 밝혀졌다.

   미륵사의 서쪽 탑을 복원하는 데 있어서 일제가 했던 복원과 1992년 복원된 동탑의 선례를 따르지 않기 위해 진정성 및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일부 반대 여론도 있었지만 6층 일부 복원으로 진행했다는 것. 하지만 담당 연구소는 추정 복원이 역사성을 왜곡할 수 있음을 주장했고 유네스코에서도 이에 대한 지지를 받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81%까지 기존 부재의 재활용과 1300여 년 동안 약화된 기존 부재의 보강 작업까지 하여 진정성을 더 끌어 올렸다. 재미난 것은 치과 치석 제거용 기구로 콘크리트를 조심스럽게 벗겨냈다고 한다. 단일 문화재로 최장기간 이루어진 수리가 이루어진 사례가 되었고 국제 기준에 따라 학술 조사, 해체, 수리의 과정을 착실히 수행했다는 점에서 석조 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가 된다고 한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과정 중에 학술 발표가 18건, 연구 논문 14건, 학위 논문 5건, 책자 9건, 특허 등록도 5건이 나왔다.

금제사리봉안기

   2009년 1월 14일 서쪽 석탑 심주석 사리공 안에 안치된 금제사리봉안기를 발견하였다. 금판에 글자를 새긴 후 붉게 주칠을 해 글자가 더 잘 보이도록 했다. 4문단으로 이루어진 이 기록의 원본과 해설을 공유해본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에 금제사리봉안기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 있다.

   竊以法王出世, 隨機赴感應, 物現身如水中月. 是以託生王宮, 示滅雙樹, 遺形八斛, 利益三千. 遂使光曜五色, 行遶七遍神通變化不可思議.

   我百濟王后佐平沙乇積德女, 種善因於曠劫, 受勝報於今生, 撫育萬民, 棟梁三寶, 故能謹捨淨財, 造立伽藍, 以己亥年正月廿九日, 奉迎舍利.

   願使世世供養, 劫劫無盡用, 此善根仰資, 大王陛下年壽, 與山岳齊固, 寶曆共天地同久, 上弘正法, 下化蒼生.

   又願, 王后即身心同水鏡, 照法界而恒明, 身若金剛等虛空而不滅, 七世久遠竝蒙福利, 凡是有心俱成佛道.

<출처: 국립익산박물관>

   가만히 생각하건대, 법왕(法王)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자질에 따라 감응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으셨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王宮)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겨 삼천(三千)을 이익 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五色)으로 빛나는 사리를 7번 요잡(遶迊)하면 그 신통한 변화는 불가사의하였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乇(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善因)을 심어 이번 생에 뛰어난 과보(果報)를 받아 만민(萬民)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삼보(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639)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하셨다.

   원하옵나니, 영원토록 공양하고 다함이 없이 이 선(善)의 근원을 배양하여, 대왕 폐하의 수명은 산악(山岳)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는 천지(天地)와 함께 영구하며, 위로는 정법(正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의 신심(身心)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金剛)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7세(七世)의 구원(久遠)까지도 함께 복리(福利)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과 함께 불도(佛道)를 이루게 하소서.

미륵사지 그외 공간

마무리

   나는 정선 전씨인데 도시조인 전섭 할아버지는 고구려 동명왕 셋째 아들 온조를 도운 백제 개국공신이었다. 8세손 전선 할아버지는 신라 성덕왕 22년에 당나라에 입국하여 중국의 문물을 소개한 분으로 후에 전법판서에 오르고 정선군에 봉해졌다. 그렇게 정선 전씨는 시작이 되었고 나는 55세손이다. 그 세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한 2021년을 살고 있는 나이지만 왠지 백제와 나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블로거래오

세 아이 아빠 엄마가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인기 포스트

카테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