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내여행서산 여행 추천, 도비산 부석사 - 노을이 멋진 천년 고찰

서산 여행 추천, 도비산 부석사 – 노을이 멋진 천년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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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에 들어가기

서산 부석사는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도비산에 있다. 도비산(358m)이 높지 않은 관계로 산 중턱에 위치한 부석사에서 확 트인 풍경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멀리 내다보이는 풍경과 해가 지기 전 굉장한 멋진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쉽게 차로 올라 자연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더해져 굉장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국보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와 종종 헷갈리는 사찰이지만 서산 부석사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창건한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이다.

부석사(浮石寺)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떠 있는 바위에 대한 창건설이 있다. 영주의 부석사도 비슷한 설이 있다고 하니 아래에 조금 자세하게 다뤄보도록 하겠다. 원래 문화재나 역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사진 촬영한 곳에 대한 블로그 글을 작성할 때 해당 장소의 역사에 대해 조금 공부하고 블로그에 소개하다 보니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 되었다. 어릴 때 집에 있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안 읽었는데, 이제서야 구매해볼까 고민하게 된다.

서산 부석사 가는 길

일주문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부석사까지 500m 떨어져 있다. 평일에 간다면 차가 많이 없어서 일주문을 지나 부석사 바로 앞까지 차를 끌고 갈 수 있는데 본인이 가본 곳 중 앞서 소개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산중의 절 중에서 가장 적게 걷는 곳이다.

서산 부석사 위치

서해를 향해 지어진 서산 부석사는 역시나 일몰 시간이 최고다. 어디에서 찍어도 노을이 내리는 곳이라 어디가 좋다고 할 이야기가 필요 없을 정도다. 오랜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건졌다. 라이트 룸에서 보정할 때도 크게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았는데 굉장히 맘에 쏙 든다. 원판 불변의 법칙은 언제나 작동한다. 사실 이젠 포토샵으로 평범한 사진도 멋진 사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시절이라 어쩌면 이젠 구닥다리 말인지도 모르겠다.

산의 지형에 따라 절이 지어진 모양을 보면 참 정이 많이 가는 사찰이다. 자세히 보면 아래 사진들 모두 높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녁에 내리는 노을빛이 건물에 드리우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그러니 사진도 예쁠 수밖에. 사실 불교를 믿는 사람이 아닌지라 절 건물 용도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절마다 이렇게 다원이 있다는 게 참 좋아 보인다. 보통 범종이 달린 건물을 범종각이라고 부른다는데 이곳은 금종각이라 한다.

서산 부석사 창건 설

이 절은 의상대사에 의해 677년에 창건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원효대사와 같이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그 분이다. 원효대사는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 보고 구역질이 난 상황에 깨달음을 얻고 당나라 유학을 가지 않았다. 후일에 만들어진 이야기란 의견도 있는 학교에서 배우는 대표적인 옛날 이야기이다. 하여간 이 사철의 창건설이 하나가 아니라고 하는데 가장 마음에 와닿는 설은 아래와 같다.

의상대사가 당나라 지장사에서 불도를 닦고 있을 때 아랫마을에 젊고 예쁜 선묘 낭자라는 처녀가 의상대사를 흠모하게 되었다. 의상대사가 다시 신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떠나기 전날, 의상대사를 찾아와 고백했지만 대사는 불도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설명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상대사가 배를 타러 나가자 낭자가 승복 차림으로 결혼은 할 수 없더라도 스님 옆에서 불도를 배우겠다 했지만, 의상대사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무리 애원을 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음을 안 낭자는 죽을 결심을 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 낭자는 용이 되어 괴로워하는 의상대사를 따라 신라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의상대사가 죽은 낭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 절을 세우기로 마음을 먹고 절터를 찾다 찾은 곳이 바로 이곳 서산 부석사이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고, 방해하고 불까지 붙이려고 했는데 그때 큰 바위가 둥둥 떠오더니 큰 소리로 마을 사람들을 꾸짖었다. 의상대사는 용이 된 그 낭자가 이번엔 바위가 되어 도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이 절은 부석사(浮石寺)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설을 짧게 풀어보자면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충신인 유방택이 이곳에 별당을 짖고 살다 죽고 나서 승려 적감이 사찰로 바꾸고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 떠 있는 것 같다하여 부석사라 했다고 한다.

슬픈 역사는 이곳에서도

2012년 국내 절도범들이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서 불상을 훔쳐 국내에 밀반입하다 검거됐다. 불상 안에 봉안된 결연물을 보니 1330년경 서주(서산)에 있는 절에 봉안하려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서주는 고려시대에 서산을 부르던 이름이다. 부석사는 이를 근거로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7년에 열린 1심에서는 관음사 주지가 1951년 발견했다는 이 불상의 복장유물에도 고려국 서주에서 32명이 시주해 보살상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고, 관음사는 조선에서 악행을 저지른 왜구 우두머리가 1526년 창건했는데 부석사의 불상이 관음사에 있었다는 것이 왜구의 약탈을 추측할 수 있다며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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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나긴 역사가 있는 이곳에서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싶다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산신각에 가기 전 마애석불을 찾아가면 된다. 절과 서쪽 풍경이 노을과 잘 어우러져 멋지다. 그래서 그런지 불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서산 부석사를 찾고 있다.

마애석불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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